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 시 128:1-2/개역개정
약 30년 전 23살의 청년이 시카고에서 대학을 다녔을 때 그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해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졸업 후 취업을 했지만 역시 영어로 인해 비슷한 아픔을 경험해야 했고, 그렇다고 가까운 부모에게는 손을 벌릴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어릴 적 돌아가셨기에 이미 가산은 크게 기울어 있었다. 청년은 미시간 호수를 바라보며 자주 자살을 생각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49%,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선택이 51%였다'고 그는 회고했다. 그가 볼 때 당시 주위에 있던 대학 친구들과 직장 동료들 가운데 누구도 그보다 비참한 이는 없어 보였다. 인생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 청년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다. 여전히 상황과 환경은 바뀌지 않았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지금'이 끝이 아니라 '장차'라는 희망과 소망이 생긴 것이다. 이후 사업에서 수완을 발휘하여 적지 않은 돈을 벌었지만 사역을 위한 소명(순전히 영어가 되지 않아서라고 했지만)에 순종하여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게 되었다. 결국 한국에서 그는 가장 존경 받는 목회자 가운데 한 분이 되었고, 30년 전 자신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누리지 못했을 40대와 50대를 현재 만끽하고 있다고 했다.
이번 시카고 집회에서 말씀을 전하셨던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의 자전적인 고백이다. 그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가장 달라진 점이 시편 128편에 나오는 '여호와를 경외함'에 있다고 했다. 경외는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그는 이 말씀을 그대로 믿었다. 비교의식과 열등감으로 인해 낮은 자존감 속에서 살아갈 때에는 주위 친구들과 동료들이 한없이 부러웠다. 그런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들자 세상적인 성공 기준으로는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을 가는 자에게 '복되고 형통하겠다'는 말씀으로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이찬수 목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은 그 외에 다른 것들에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다. 그 두려움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왠지 모를 기쁨과 평강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와 달리 세상을 향한 두려움은 내가 쌓아 올렸던 것들이 언제라도 무너질 수 있음을 알기에(혹은 알지 못하더라도 언젠가 경험할 수 밖에 없다) 일종의 공포감을 가져온다. 이것이 세상적인 기준에서 소위 성공하거나 출세하는 것, 혹은 돈을 많이 벌어서 쌓아놓는 것이 평안내지는 기쁨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쁨 혹은 행복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인생에게 주시는 복이기 때문이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우리가 '우리의 손이 수고한 대로 정당하게 먹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에게 주시는 복이다. 세상은 결코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만약 종교나 신앙의 이름으로 그 평등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끔 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폭력일 뿐이다. 다만 하나님 안에서 세상은 공평하다. 그 공평은 이 세상의 그 어떤 정의나 공의보다 더 완전하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은 '수고한 대로' 거두는 법칙이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인데, 그 수고에 어울리는 열매는 단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시간에서도 효력을 발휘하는 절대적인 법칙임을 성경은 강조한다.
당신은 세상을 두려워하는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 그 대답이 무엇이든 간에 이미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무엇을 선택했는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드러나기 마련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 땅의 교회들과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글쓴이: 최호남 목사, 어바나예수사랑교회 IL
올린날: 2013년 7월 25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