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뉴욕에서 오는 5월 우리 교회에서 열리게 될 평화컨퍼런스 준비모임이 있었습니다. 강사 선정을 논의하던 중에 제가 모르는 분이 추천되기에 누구인지 물었더니 어느 분이 "김목사님이 모르는 사람이 다 있네요."하고 웃습니다. 보통 사람들에 비해서 제가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알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취침 전 이를 닦으려고 거울 앞에 섰다가 제 얼굴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거울 속에 있는 인간이 누구인지 새삼 이질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너 누구냐?" 물었습니다. 정작 꼭 알아야할 인간이 바로 나 자신인데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아온 것에 비해 나 자신에게는 소홀했던 것 같습니다.
본 훼퍼 목사님이 히틀러 나치 횡포에 저항하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시를 썼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남들이 보아주는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자신과 자기 자신이 느끼는 한없이 연약하고 초라한 자신 사이에서 번민하다가 고백합니다. "나는 누구인가?&ellipsis;이 적막한 물음은 나를 끝없이 희롱한다/내가 누구이든/나를 아는 이는 오직 당신뿐/나는 당신의 것이외다/오! 하나님"
본 훼퍼는 숭고한 삶의 목적이 있기에 감옥에서 주옥같은 신앙고백의 글을 남겼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고 넬슨 만델라, 마틴 루터 킹, 신영복&ellipsis; 이런 분들은 감옥에서도 고상하고 아름다운 생각들을 마음에 담고 살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저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요즘 부쩍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 십 년 안팎으로 목회 은퇴라는 생각도 엄연한 현실입니다. 은퇴 이후도 건강하면 2-30년 살아야 하는데 그때 거울 앞에 서있는 나 자신이 밉지 않고 반가우려면 정말 정신 차리고 잘살아야겠다 생각해봅니다.
우리 교회 Vision 50/500/5000도, 우리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의 일천교회 운동도, 우리 조국 한반도 평화통일의 소원도 행여 잘못되면 허망한 숫자놀이나 거창한 말장난으로 끝날까 두렵기도 합니다. 울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다시 웃음을 회복시켜 줄 수 있다면, 날개 다친 새 한 마리를 고쳐 다시 날게 해 줄 수 있다면 내 인생은 헛되지 않으리&ellipsis; 이런 비슷한 글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작아도 작은 사랑의 시작이 있으면 결국에는 큰 사랑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히말라야를 걸어 넘어온 티베트 승려에게 서방 기자가 "어떻게 넘어왔느냐?" 물었더니 "한 걸음씩 걸었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것처럼 하루 한 사람 한 가지에 주어진 삶을 최선으로 살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삶의 전제가 무너진 경험을 하게 되니 예전에는 당연한 것들도 어떻게 생각하고 처신해야 하는지 때로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내 생각이 계속 돌아가고 또 돌아가기를 반복합니다. 세례 요한이 "당신이 오실 바로 그 분 그리스도냐?"는 질문에 "나는 아니다."라고 답한 것을 생각하면 내가 아닌 나를 내려놓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텐데 쉽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계셔야 할 자리와 내가 있어야 할 자리도 재배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분의 물으심 앞에 다시 정직하게 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이 삶의 기본을 고민해야 하듯 교회도 존재목적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일 비전총회에서 저는 올해를 '전도와 선교'의 원년으로 삼자고 했습니다. 그 동안 많이 소홀히 했습니다. 무엇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잘못된 선교단체들과 선교사들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크다 보니 선교 자체에 소심했다는 반성이 있습니다. 전도 역시 한 사람이 한 사람 전도하면 된다는 생각도 셀처치에서 한 가정 전도로 바꾸자고 했습니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해야 힘이 나고 일이 될 것입니다.
한참 잊고 있었던 윤동주 시인의 '자화상'이 떠오릅니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 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글쓴이: 김정호 목사, 아틀란타한인교회 GA
올린날: 2013년 2월 7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