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후에 누군가 다가와서 반갑게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셨어요? 목사님! 저 기억 못하시겠어요?" "네&ellipsis; 미안합니다만&ellipsis;" "아휴 목사님, 지난 번 집회 하실 때, 몸건강하시라고 건강차를 끓여다 드렸었는데&ellipsis;" 저의 기억 못함에 몹시도 서운해 하는 마음이 눈빛에서부터 얼굴로 번져 나왔습니다. 참으로 미안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저의 나이 탓이려니 자책하기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하실 때, 언제나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 주변에 몰려와 예수님께 손을 대거나 병든 가족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몰려드는 군중에 주님은 좀처럼 홀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시간을 내서 홀로 산에 올라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혼자 감당하던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워 함께 사역을 분담하기 원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사역을 분담할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막 3:14-15).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제자들의 이름을 적어 보라고 한다면 그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베드로, 요한, 안드레, 마태 그리고 야고보 정도는 알고 있고, 예수님을 판 가롯 유다도 기억할 수 있겠지만 다대오, 바돌로매, 가나안인 시몬,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를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막 3:16-19)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 중, 오직 제자단에 들었던 12명의 이름조차 우리는 다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숫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기껏 반정도만 기억할 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며 헌신했던 많은 사람들 중에 모두가 기억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며 헌신한 사람들 중에서 일부는 기억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음이 있는 기적의 씨앗을 예수님께 드린 그 아이의 성도 이름도 모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지역에서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다가 한밤중에 찬송하는 가운데 갑작스런 지진으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도망하지 않고 있다가 놀라 달려온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말씀을 전하고, 그 간수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에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치료해 주었으며, 음식을 차려 대접하고 회복하기까지 도왔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사람의 이름은 거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심지어 바울 서신 어디에도 그렇게 큰 도움을 받았던 간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과 사람들로부터 받는 찬사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느냐로 그리스도를 잘 섬겼는지가 결정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섬겼는지를 하나님이 모두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당신의 이름이 하나님 앞에서 기억될만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글쓴이: 윤동현 목사, 그린교회 CA
올린날: 2013년 4월 25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