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편집자 주: 이 글은 연합감리교뉴스의 <영화와 설교> 시리즈로, 드라마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에 대한 현혜원 목사의 글입니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힙니다.)

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현혜원 목사가 시카고 제일 ”템플” 연합감리교회에서 예배 중 기도하고 있다. 사진 제공, 현혜원 목사.

퓰리처상을 수상한 앤서니 도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은 4부작 미니시리즈입니다. 유명한 소설이 원작이지만 저는 제가 좋아하는 배우인 마크 러팔로와 휴 로리가 나와서 보게 되었습니다.

제목이 꽤 흥미로웠어요. 아이러니한 제목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대체 보이지 않는 빛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이 드라마에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한 소녀가 등장하는데, 그 소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빛이 되어줍니다. 아버지는 시각 장애가 있는 딸을 위해 집 근처의 건물과 거리를 손수 조각해서 거대한 지도를 만들어 딸이 만져보고 거리와 건물을 외울 수 있도록 합니다. 딸은 아버지 덕분에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복잡한 파리의 거리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됩니다. 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끝이 없고 무조건적입니다. 그는 딸에게 정말 한 줄기 빛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1년 전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어린 소녀는 매일 아버지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어째서인지 소녀는 아버지가 살아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야기 내내 소녀는 아버지를 기다리지만 이야기의 마지막 절정 부분에서 악당은 1년 전에 자기가 아버지를, 그것도 매우 고통스러운 방식으로 죽였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를 죽인 이 악당은 이제 그녀도 죽이려고 합니다. 그토록 간절히 기다리던 유일한 빛을 잃었다는 사실을 방금 알게 된 그녀는 이 소식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물론 소녀는 절망했습니다. 상실을 비웃는 악당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나 소녀는 곧 보이지 않는 눈을 부릅뜬 채 이렇게 속삭입니다.

"아빠, 내가 사라질 때까지 아빠는 사라지지 않아요. 아빠가 사라질 때까지 나도 사라지지 않아요. (Papa, you will not go until I am gone. I will not go until he is gone)"

보이지 않는 아버지에게 말을 건넵니다. 짧은 속삭임 후에 소녀는 일어나서 악당을 죽이고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이 부분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모든 일이 너무 빨리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는 10분 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나거든요. 10분 만에 소녀는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울다가 갑자기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악당을 죽이고, 생전 처음 보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기까지 합니다.

“아니,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소녀가 방금 배운 것은 바로 앞에 서 있는 악당에게 아버지가 고문당하고 살해당했다는 끔찍한 소식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영원히 파괴할 수 있는 끔찍한 트라우마입니다. 하지만 극 중에서 소녀는 전광석화처럼 극복합니다. 저는 코웃음을 치며 ‘말도 안 돼. 이 드라마는 잘못 만들어졌어.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유일한 빛이었던 아버지의 죽음을 그토록 빨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물리적으로는 부재중이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그녀 안에 살고 있음을 소녀가 깨달았기 때문이라는 걸요. 소녀의 대사가 그것을 알려줍니다.

"아빠, 내가 죽을 때까지 아빠는 죽은 게 아니에요. 아빠가 떠날 때까지 난 떠나지 않을 거예요."

그 사실을 깨달았기에 소녀는 아버지의 부재, 즉 빛의 부재를 보지 않습니다. 대신 그녀는 여전히 빛을 ‘봅니다’. 소녀는 그 빛을 가슴에 품고, 또 실제로 그 빛을 자신의 삶에서 살아냅니다. 아버지가 준 사랑이 빛처럼 남았기에, 소녀는 그렇게 빨리 일어날 수 있었던 거죠. ‘볼 수 없는 빛’은 그녀의 영혼 안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요즘 크리스마스 조명을 정말 즐기고 있습니다. 오후 4시면 이미 어두워지는 추운 시카고의 겨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니까요. 그런데 저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크리스마스 조명의 따뜻함이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길모퉁이마다 이민자들을 볼 때, 특히 이 황량한 겨울에 길바닥에 누워 몇 시간을 보내는 아주 어린 아기들을 볼 때면 제 마음속에 켜 놓은 작은 촛불이 거센 바람에 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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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공격하는 인공지능 표적 미사일의 이름을 ‘가스펠(the Gospel)’이라고 지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들어본 살상 무기의 이름 중 가장 끔찍한 이름이었습니다. 살상을 위한 전쟁 무기에 ‘복된 소식’을 의미하는 ‘가스펠’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요. 다시 한번 제 마음속의 빛이 바람에 깜빡이는 촛불처럼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보내신 빛이 이번 성탄절에는 거의 비추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저만의 생각일까요? 2000년 전 예수님이 걸으시고 사셨던 가자지구의 잔해가 그 빛을 뒤덮은 것만 같습니다. 우리 교회 바로 앞에서 열린 크라이스트킨들마켓(christkindlmarket)의 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온기가 모퉁이를 돌면 보이는 길거리의 이민자 아이들에게는 닿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세상이 우리에게 "예수는 죽었어!"라고 외치는 듯한 느낌입니다. “너희의 빛은 돌아오지 않아!"라고 외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악당이 소녀에게 "너의 빛은 죽었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라고 악랄하게 퍼부어대듯이요. 가자지구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시카고 추운 길거리에 누워 있는 어린아이들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질문하게 됩니다. "예수님,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요? 지금 세상의 어디에서 평화와 사랑과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건가요?”

그런 저에게 드라마의 소녀가 용기를 주었습니다. "아빠, 내가 죽을 때까지 아빠는 죽지 않아요. 아빠가 죽기 전에는 가지 않을 거예요."라는 소녀의 속삭임은 요한복음의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한복음 14장 19-20절)

"혜원아, 내가 네 안에 있고 네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않니? 네가 죽지 않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단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너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나님이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빛의 부재를 외칠 때 우리는 이 빛을 우리 안에 품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 빛을 볼 수 없지만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세례 요한을 빛의 증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은 보지 못한 빛을 보았습니다. 오직 요한만이 빛을 목격하고 빛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빛을 보지 못하는 세상, 빛이 없다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요한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보지 못하는 빛을 보았고, 그 빛이 우리 마음속에서 빛나고 있으며, 우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또 그 빛이 죽지 않는 한 세상을 향한 희망도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소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요한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입니다. 다시 오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세상이 보지 못하는 빛을 보는 자들입니다.

이민자의 어린아이들처럼 이집트 거리 어딘가에서 잠을 청해야 했을지도 모를 우리의 빛이신 예수님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빛이 가자지구의 잔해 속에서 꺼지지 않도록, 시카고의 겨울 추위 속에서 얼어붙지 않도록 다시 오실 그 빛을 준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이 볼 수 없는 빛의 전달자이자 증인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Thomas E. Kim)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 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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