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佛家)에서는 스님들의 교만과 아집을 없애기 위해서 탁발(托鉢)을 해서 먹고 살도록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탁발은 "비럭질"을 의미합니다. 거지처럼 "발우"라는 그릇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음식을 구걸해서 먹고 사는 생계 방법입니다. 물론 이런 행동은 음식을 보시해주는 사람들에게 복덕(福德)을 쌓게 해주려는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구도자들에게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잊지 않게 해주려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자칫하면 출가한 사람이 오히려 "스님"이라는 이름으로 "부"(富)를 누리고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되어 본래의 취지였던 득도(得道)를 포기하고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구도의 방법입니다.
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거하고 병든 사람들을 고치게 하실 때, 지팡이나 배낭, 양식이나 돈 그리고 입고 있는 옷 외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게 하시고, 마을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의 집에 들어가 신세를 지도록 하셨습니다. 그의 집이 부하든 가난하든 가리지 말고 한 곳에 머물면서 그에게 복을 빌어 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누가 9:1-6). 의식주(衣食住)나 소유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사명에만 집중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중도에 변질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운 섬김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은 "자신을 아는 것"(Knowing Thyself)입니다. 몇 억 만 광년이 걸리는 먼 우주에 떨어져 있는 별도 연구해서 발표하는 과학자도 작은 일에 삐쳐서 유치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오죽하면 유행가 가사 중에 "내가 왜 이러는지 몰라. 도대체 왜 이런지 몰라"라는 말이 나왔겠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인식하기 어려운 존재가 바로 "나" 자신입니다. 철학의 아버지 "소크라테스"(Socrates)는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나"를 아는 것이 결국 철학의 시작이고 마침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인지능력입니다. 즉, "인지하고 있는 자신을 인지하는 능력"(Cognition of Cognition)입니다. 웃고, 울고, 화를 내고, 질투하고 있는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 "메타인지 기능"입니다. 이 기능이 발달된 사람은 자신을 잘 압니다. "내가 화를 잘 내는 사람인지," "내가 우울한 사람인지," "부정적인 사람인지" 스스로를 잘 인식합니다. 그래서 매사에 자신을 되돌아보고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영성(靈性)이 발달된 사람일수록 이 메타인지기능이 뛰어납니다. 그러나 이 메타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사람은 자기만 잘 난 줄 압니다. 도무지 "자기반성"이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본연의 모습을 쉽게 상실해 버립니다. "메타인지 능력"을 기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벗어나서 세상을 둘러보면, 세상이 참 많이 달라 보입니다. 겸손하게 스스로를 돌아보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글쓴이: 김세환 목사, LA연합감리교회 CA
올린날: 2012년 7월 10일 연합감리교회 공보부 T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