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화두 “죽은 자를 산 자가 구할 수 있는가?”와 서울의 밤

(편집자 주: 한국이 계엄으로 민주주의와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한국 상황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한국 교회는 한국 시민들과의 연대를 약속했다. 이글은 한국 상황과 관련한 박충구 교수의 글이며, 연합감리교뉴스는 언제나 다양한 의견을 담은 글을 환영합니다.)

서울의 밤

12월 7일, 박충구 교수가 대한민국 국회 의사당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은 박충구 교수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연합감리교뉴스에서 일부 잘라냈음을 밝힌다. 12월 7일, 박충구 교수가 대한민국 국회 의사당 앞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은 박충구 교수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연합감리교뉴스에서 일부 잘라냈음을 밝힌다.

2024년 12월 3일 밤늦은 시각,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교수님, 계엄령이 나왔다는데 알고 계셔요?”

나는 “설마 농담하는 거지?”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지인은 “아니에요. 얼른 티브이를 보세요!“

사실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니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는 장면을 다시 보여주고 있었다.

이어 미국의 큰아이와 서울에 사는 작은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위험하지 않아요?“고 내게 물었다. 아이와 통화하는 동안 광주 5·18 항쟁 장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윤석열 부부의 초법적 무도함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그 근간인 법치주의를 마구 훼손하고 있다는 판단에 나는 그동안 매주 토요일이면 서울 시청 앞에 나가 윤석열 퇴진과 탄핵을 요구해 왔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은퇴한 교수, 성직자를 중심으로 30여 명이 모여 ‘민주사회를 위한 지식인, 종교인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인하대 명예교수이신 김영 교수님과 함께 내가 공동대표를 맡아 김민웅 촛불행동 대표가 이끄는 촛불 시위 대열에 지난 2년여 뜻을 함께해왔다. 잠시였지만 본능적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토요일 시청 앞 집회에서 우리 모임의 시위 현장을 사진 촬영하던 정체 모를 사람의 얼굴도 떠올랐다.

텔레비전에서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긴급한 목소리로 “국민 여러분, 국회로 달려와 주십시오.”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그때 김영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고, 우리는 현 상황에 대해 잠시 의논한 후, 국회 가까이에 사시는 김영 교수님 부부는 국회로 달려가기로 했고, 나는 내가 거주하는 파주에서 현 상황을 모니터링하기로 했다.

텔레비전을 보니 무장한 군인들이 국회에 들어가려고 달려간 시민들에 가로막혀 몸싸움하고 있었다. 50~60대 어머니들이 계엄군을 붙잡고 늘어지며 “정신 차리라”며 소리를 지르기도 했고, 젊은이들 여럿이서 계엄군의 장갑차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특전사 군인을 태운 군용 헬기 여러 대가 국회 상공을 선회하며 국회 잔디밭에 병력을 수송하고 있었다. 긴박감과 위기감이 몰려왔다.

“지금 우리 국회는 (부정선거로)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서 국가의 사법 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기반이 되어야 할 국회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윤석열 대통령이 자의적 판단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였다. 국회를 ‘범죄자 소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괴물’이라고 보았다면 그들을 뽑아 국회에 보낸 국민은 무엇이란 말인가?

국민과 국회의 긴급 대처 - 6시간 만에 해제된 비상계엄

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시민들은 국회로 달려갔다. 시민들은 국회 앞에서 계엄군의 군용차를 가로막고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50대 어머니들은 계엄군의 뺨을 때리며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비상계엄 발령 당시 헬기 동원이 예상보다 늦어졌고, 동원된 군인들은 시민과의 충돌을 피하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촉즉발 위기의 순간에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이 군에게 국회 진압 작전을 거듭 명령했지만, 투입된 군 지휘관들은 수뇌부의 지시에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은 총을 뒤로 메기도 했고, 민간인을 향해 총을 겨누지도 않았다. 00시 42분경 대통령은 특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 국회의원을 끌어내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이 명령은 국회 창문을 깨고 국회 본회의장에 난입하려는 계엄군에 맞서 소화기를 분사하며 완강히 저항하는 국회 보좌관들과 시민들에 의해 가로막혔다.

긴박한 시간이 지나는 사이 국회 담을 넘어 국회 본관으로 들어온 국회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계엄을 해제하기 위한 의사 정족수,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가 채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당 의원들은 거의 전부 국회 담을 넘는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회에 들어왔으나, 여당 추경호 원내 대표는 본회의장으로 여당 국회의원을 모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국회 밖에 있는 국민의힘 당사로 모일 것을 지시했다. 새벽 1시경 의원 190명이 모인 것을 확인한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잡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명 전원 일치로 통과시켰다. 대통령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전해진 즉시 계엄을 해제할 의무가 있었으나, 무려 3시간 반이나 늦은, 새벽 4시 30분경이 되어서야 비상계엄 해제를 발표했다. 이로써 2024년 12월 3일 밤 선포된 비상계엄은 발령 약 6시간 만에 해제되었다.

위헌적이며 불법적인 비상계엄

대한민국 헌법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기 위한 법적 조건을 명시하고 있다.

헌법 제77조, ①대통령은 전시ㆍ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②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한다. ③비상계엄이 선포된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영장제도, 언론ㆍ출판ㆍ집회ㆍ결사의 자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④계엄을 선포한 때에는 대통령은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하여야 한다. ⑤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

위 헌법 조항에 따르면 계엄하에서도 국회의 권능은 제한되지 않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헌법 77조 ①조항에 명시하고 있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 계엄 선포 당시 대한민국은 전시나 사변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처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헌법 77조 ④항은 비상계엄을 지체 없이 국회에 통고해야 하는데 그는 하지 않았다.

그는 군 병력과 경찰을 대거 동원하여 헌법기관인 국회를 봉쇄하고 불능에 빠뜨리려 시도했다.

형법 87조에서 명료하게 규정하고 있는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군을 동원한 “폭동 사태”로 규정될 상황이었다. 국회는 불법성과 위헌성을 따져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하고 통보했으나 대통령은 내란 동조자들과 다른 길을 찾느라 즉시 해제 선언을 하지 않고 국회가 통보한 지 약 3시간 후인 새벽 4시 30분경 계엄 해제 담화를 냈다. 언론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불법적인 것이며 위헌적인 것이라 규정하고, 동시에 군을 동원한 폭동으로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을 정지시키려 시도한 국헌문란 행위로 규정하고 이 사태를 내란으로 규정했다.

내란 사태의 진상

내란 사태가 일어난 지 2주가 지나는 이 시점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주장했으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치적 적대자들을 반국가 세력으로 규정 제거하고 영구 집권을 꾀하기 위해 사전에 치밀하게 모의된 내란이었다는 증거가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국정원에 “이번 기회에 (정치인들) 싹 다 잡아들이라.”라고 지시(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했고, 군에는 “(국회)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라고 명령(곽종근 특전사령관)했으며, 경찰청장에게는 “계엄 발령 3시간 전 안가에서 관련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조지호 경찰청장)라는 증언, 그리고 1,000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지하 벙커에 검거된 정치인들을 감금할 계획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다. 더 놀라운 것은 체포 대상자에는 이재명 민주당 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당 대표, 박찬대 민주당 원내 대표, 정청래 국회 법사위원장, 조국 조국혁신당 당 대표, 김민석 민주당 수석 최고위원, 그리고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부장판사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내란 계획을 입안하고 실행한 이들은 충암고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 김용현 국방부 장관, 그리고 여인형 국군 방첩사령관 등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현장 출동 지휘관들에게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 신속한 작전 수행을 압박한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비상계엄 명분을 만들기 위하여 북한의 도발을 조장하려고 북한 쓰레기 풍선 부양 원점을 타격함으로써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을 유도하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방장관이 지휘하던 군 수뇌부들이 내란 혐의로 대거 체포 구금되었다. 대통령은 내란 수괴로 적시되었고, 김용현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 육군참모총장,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곽중근 특전사령관,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이 연이어 구속되었다. 국회에 투입된 특전사와 수방사 예하 부대장들도 수사 대상이 되었다. 심지어 민간인 신분인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이 이 내란 사태에 깊이 개입하고 북파 공작원과 같은 암살 부대원들을 차출하여 대기시켰다는 사실도 밝혀져 12월 18일 긴급 구속되었다.

민주시민의 행동과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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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저녁 비상계엄을 발동할 만한, 전시에 준하는 상황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하여 미국은 “중대한 오판”을 했다고 지적했고, 대한민국 국민은 계엄군에 의한 광주 학살을 떠올리며 그런 일이 다시는 이 땅에서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국회로 달려갔다. 그들은 맨몸으로 장갑차를 세우고, 병력을 실은 군용차 이동을 가로막았다. 이러한 모든 장면은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계엄이 해제된 직후, 국회의 기능을 마비시키기 위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국회의원을 몰아내라고 지시한 사람이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국회는 계엄 상황이 일어난 지 4일 만에 대통령을 헌정 질서를 유린한 비상계엄의 위헌, 위법성을 지적하고 그 책임을 물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투표에 부쳤으나,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이 투표 직전 당론으로 탄핵 반대를 결의하고 국회 본회의장에서 퇴장함으로써 대통령 탄핵 결의를 위한 국회의원 정족수 2/3인 200명을 채울 수 없어 탄핵안이 무산되었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여의도에 몰려들기 시작하여 매일 수십만 명의 시민이 국회대로에서 윤석열 탄핵을 외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12월 14일, 계엄령 선포 11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 2차 탄핵소추안이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 통과되었다.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되었다.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결의되는 순간 여의도 곳곳에서 형형색색 응원봉과 촛불을 든 100만 시민의 환호와 환성이 울려 퍼졌다.

시위에 참여한 이 대다수는 20대에서 30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고, 이태원 참사를 통해서 국가 권력의 “무책임성”을 경험한 세대였다. 위헌적 권력자의 손에 권력을 계속 맡겨놓으면 피바람이 몰아친 5·18 광주가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음을 직감했던 이들이다. 시민들은 그동안 윤석열-김건희의 권력형 비리에 시달려왔고, 마침내 자신의 권력을 항구화하기 위해 전두환이 사용한 바로 그 수단을 동원한 윤석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 결과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1일 만에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었다.

외신들의 반응

외신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무엇보다 아시아에서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에서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된 사실에 경악했고, 비상계엄의 성격이 위헌이며 불법임을 보도했다. 미국 국무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한 오판을 했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 불과 2시간 남짓 걸리는 시간 안에 계엄 해제 결의를 이루어낸 우리 국민의 저항과 국회의 극적인 결의 순간을 보도하면서 민주주의 회복력이 강한 대한민국이라고 평가했다.

만일 국민들이 여의도 국회 앞으로 달려가 계엄군을 막지 못했더라면, 비상계엄 사태가 이어지고 현 정권을 비판해 온 정치인과 언론인, 지식인이 대거 체포되어 구금되었을 것이며, 온갖 비인간적인 일을 겪고 있었을 것이다. 조속히 비상계엄 사태를 멈추게 한 상황에서 민주주의 회복력이 강한 나라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군부에 의한 2차 계엄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우려로 잠 못 드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외신들은 K시위 문화에 주목하며 놀라워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할 당시에는 촛불을 든 시민이 주류였지만, 이번 탄핵 시위에는 형형색색의 K팝 응원봉을 든 젊은 무리가 대거 참여하여 K팝을 부르며 명랑하게 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를 줄기차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약 10일간 이어진 시위는 연인원 300만 명 이상이 운집했지만, 사건 사고가 단 1건도 없는 평화적 시위였고, 차가운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위에 참여한 이들을 위해 선결제된 다양한 음식과 커피, 음료, 핫팩이 시위 현장마다 차고 넘쳐 대한민국 국민의 높은 시민 연대 의식을 보여주었다. 시위를 마친 다음에도 시위 현장을 말끔히 정리하여 거대한 무리가 운집했던 자리라고는 믿을 수 없이 깨끗하게 청소하고 떠나는 시민 정신에 놀라워했다.

위헌적 계엄령이 대한민국에서 선포된 주간에, 스웨덴에서는 국가 폭력 문제를 고민하며 다양한 소설을 쓴 한강 작가가 아시아 여성 최초로 스웨덴 한림원에서 202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한강 작가의 치열한 작가 정신과 윤석열 대통령의 군을 동원한 비열한 폭력 사태는 한국 민주 시민들 가슴에 깊은 분노를 자아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기뻐하던 대한민국 국민의 긍지를 여지없이 무너뜨린 대통령에 대한 분노,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는 국가 폭력 사태에 대한 분노가 겹쳤다. 그 분노가 민주시민을 여의도 광장으로 폭풍처럼 밀려들게 만든 것이다. 민주시민이 승리했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회복되었다.

기독교사회윤리학자인 필자의 유감

기독교사회윤리학자인 필자가 가장 유감스럽게 느끼는 점은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일부 개신교인들이 광화문에서 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고,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탄핵소추 무효를 외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찌하여 대한민국 일부 개신교인들은 역사도, 민주주의적 가치도, 법치주의도,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도 이리 무지한 것인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사에서 잊힐 것이지만,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무리는 끊임없이 시대착오적 오류를 범하며 개신교의 사회적 공신력을 추락시킬 것이 염려된다. 그 추락으로 인한 여파는 한국 개신교의 미래를 여지없이 어둡게 할 것이라고 본다. 

나오는 말

한강 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를 산 자가 구할 수 있는가?”라는 의미 깊은 질문을 던졌다.

그 물음에 대한 답이 2024년 12월 대한민국에서 주어졌다. 과거에 겪은 국가 폭력 경험이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을 지켜주고, 그때 국가 폭력에 저항하다가 희생된 이들의 존재 의미를 오늘의 산 사람들이 실현했기 때문이다. 전두환의 12·12 반란과 5·18 광주, 박근혜 정권과 4·16 세월호 참사, 그리고 윤석열 정권과 10·29 이태원 참사에서 희생된 이들에 대한 기억이,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대한민국 민주시민을 움직인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피를 흘리지 않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외신들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상처를 입어도 이내 회복력을 보인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실상은 과거 비민주적인 국가 폭력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된 이들이 오늘날 국가 폭력에 저항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민주 시민들의 저항에서 만나고 있으며, 현재가 미완으로 그친 과거를 돕고, 민주화를 통하여 산자들이 죽은 자를 위로하는 사건이 일어났기에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지켜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위헌적 계엄 포고를 한 후 2주 만에 대한민국 국민은 그를 탄핵소추하여 직무를 정지시켰다. 헌법재판소에서 그의 탄핵소추가 인용되면, 그는 역사 현장으로 되돌아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헌법재판소가 국회의 탄핵소추를 인용하여 파면하면, 그는 대통령으로서의 자격을 잃을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이 내란 사태를 극복하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민주주의 사회로 진보할 것으로 믿는다.

김응선 목사는 연합감리교뉴스의 한국/아시아 뉴스 디렉터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이메일 [email protected]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받아보기를 원하시면, 무료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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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역에서 은퇴한 김용환 목사는 2024 연합감리교회 한인총회 연차대회에 참석한 후, 자신이 느낀 소감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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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사역부에서는 소수민족/인종사역자훈련기금으로 최대 1만 불까지 지원한다. 신청은 2025년 1월 3일부터 시작되었으며, 접수 마감일은 2025년 3월 31일이다. 한인 교회나 한인 교역자가 사역하는 교회는 모두 지원 대상이 된다. 사진 출처, 총회고등교육사역부.

2025년 소수인종사역자훈련(EIST) 기금 신청 접수가 시작되었다

고등교육사역부에서는 소수민족인종사역자훈련기금으로 최대 1만 달러까지 지원한다. 신청은 2024년 1월 3일부터 시작되었으며, 접수 마감일은 2025년 3월 31일이다. 한인 교회나 한인 교역자가 사역하는 교회도 이 기금을 신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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