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시 34:14)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마 18 : 21-22)
한국전쟁이 시작되었던 그 이후 70년을 맞이하는 날에 한인총회와 평화위원회를 중심으로 함께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갖는 것을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간구합니다.
오늘 저는 생각보다 아주 현실적인 고민이 깊어집니다. 아마 코로나 19 이후(After COVID; AC)라는 변혁적인 순간을 살면서 불확실성과 대면하는 나날이 길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인종적인 정의와 평등이 실현되어야 하는 “흑인의 삶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가 동시에 교차하는 역사 현실 속에서 믿음 가지고 예수의 제자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이 더 절실한 증인의 삶을 요구하기 때문이라 여깁니다.
전쟁과 분단, 대결과 미움의 70년 역사가 한국인들에게, 아니 세계에 흩어져 사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오래 남겨 놓았습니다. 어릴 적 가위눌림처럼 엄습하여오던 전쟁의 두려움은 지났어도 미국에 사는 삶의 정체성은 그 분단 70년의 역사와 떼어 놓을 수 없는 현실이라 여기기 때문에 더 절실합니다.
미국의 정책 변화가 실제 한반도 현실에 주는 영향이 무게가 있기에 이곳에서 느끼는 책임이라 여기기도 합니다. 그 책임이 바로 오늘 평화를 구하면서 기도하는 저희의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 기도하게 됩니다. 물론 한반도 남과 북, 북과 남이 주체적으로 평화를 중심으로 한 대화와 미래 설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후원하는 마음 역시 저희에게 큽니다.
그 실존적인 자리가 오늘 함께 읽은 마태복음 18장 21-22절,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주목하게 됩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성서 속에 70번은 중요한 숫자입니다.
그것도 용서하는 일과 직접 관계있는 언급이니 오늘 70은 서로 용서하고 사랑과 평화를 실천하여야 하는 한반도 현실을 대비한다고 읽게 됩니다.
이제 분단과 전쟁은 종식되고 새로운 평화의 관계가 시작되어야 하는 70이어야 합니다. 이제 용서와 화해의 성서 가치가 한반도에서 현실화되어야 합니다. 서로 지금까지의 감정과 왜곡을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의 눈으로 함께 새로운 역사를 써가야 합니다. 바로 주께서 하라 하신 용서의 실천이 아주 절실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한국전쟁 시작 70년을 맞이하면서 세계교회는 전쟁과 분단의 질서를 넘어 화해와 평화의 새로운 질서를 열어가는 일이야말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멈추거나 양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 주께서 허락하신 선교적 소명이라 여겨야 합니다.
오늘 기도하는 우리에게 과거의 역사는 전쟁의 잔인함과 폭력, 반 생명적인 상처이었음을 기억하고,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반대되는 파괴와 폭력의 악순환이었음을 자명하게 인식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우리에게 양보할 수 없는 신학적인 진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파괴되고 업신여겨도 되는 생명, 없애도 되는 생명, 죽여도 되는 생명이란 없고, 차별받아야 하는 생명, 그 생명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한 생명마저도 구원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을 알기에, 바로 그런 면에서 전쟁을 우리는 반대합니다. "주님, 세계에서 전쟁이 더 이상 없게 하시고 평화를 이루어 주시옵소서."라고 화해자로 살기를 날마다 간구하기에 오늘 우리는 다시 화해자로 오신 주님의 제자로 믿음을 고백하고자 합니다.
화해자로 사는 것이 어려운 과제라는 사실을 날마다 일상에 깨닫습니다. 우리에게 반기를 들고, 거리낌과 짐을 주는 이들이 늘 주변에 있고, 그런 현실에서 분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고백합니다. 내 마음에 안 들면 뱉고, 아예 눈을 돌리려는 얄궂은 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지만, 그 십자가의 중한 의미의 제자도는 날로 어려운 과제인 것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바울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 12:18, 21)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한 확신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이 존재를 향하여 강한 용기를 증거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고후 4:8-10)
오늘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다시 우리들의 사명, 우리들의 기도, 우리들의 다짐은 날마다 화해자로 사는 것이라는 강렬한 고백을 함께 나누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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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동역자, 연합감리교인 여러분, 저희가 서로 형편이 다르고 섬기는 자리가 다르나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평화가 주인이 되고 평화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이 존중받고 사랑을 경험하는 나라로 만드는 일이 우리들이 소명이고 사명임을 동의합니다. 하여 오늘 우리는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하며 위해서 기도하고 헌신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감독으로 사역을 시작하던 날, 기도문에 적은 고백 같은 다짐이 있었습니다.
주님 제가 연합감리교회 감독으로 섬기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그중 제 시간의 십일조를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한 시간으로 사용하게 도와주십시오. 코리안으로서 사역하면서 시간의 십일조를 코리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사용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였는데 그게 아주 현실적이지 못한 기도였다는 고백을 지금 합니다. 다만 어떤 일이든 주님 화해와 평화를 구하는 시간으로 헌신하게 도와 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끄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따라서 이제 더욱 <평화와 화해의 일>을 행함으로 “십자가 따라가는 제자, 십자가 지고 사는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직 70년의 전쟁 종식이 아닌 휴전 상태에서 평화를 살지 못하는 한반도의 상황을 아프게 여기면서 주님께 중보 기도합니다. 정전에서 평화의 협정과 관계로 한반도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그런 역사를 이루어 세계 모든 열방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드러내는 바로 선 민족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우리들의 부족을 아시는 주님, 한국 전쟁 70년을 기억하면서 오늘 기도하는 저희에게 십자가의 전령, 화해자의 삶, 평화를 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화인을 다시 우리들의 가슴에 찍어 주시옵소서. 70 X 7, 그 무한한 조건 없는 용서를 이 시대에 실천하고 살아가게 도와 주십시오.
이제 우리들의 사역과 헌신이 평화의 도구로, 화해자로, 일치한 마음을 이루는 제단으로 삼으사,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세우고, 엮고, 합치고, 높이고, 존중하고, 분리보다는 화해와 화합 그리고 일치를 사명으로 아는 믿음의 길을 가게 도와주시옵소서.
다시 위급한 처지에 놓인 한반도를 주님이 간섭하셔서 재창조를 이루시고 평화의 나라로 삼아 주시옵소서. 주님만이 그리하실 수 있기에 저희의 손을 잡아 일꾼이 되게 하시옵소서.
‘평화의 날이 오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라.’(34:14)라고 하신 시편 말씀을 이루어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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