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은 연합감리교뉴스가 의뢰한 4월 15일 한국의 총선과 기독교에 대한 박충구 교수의 기고문이다. 이 글의 일부는 본지의 입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2020년 4월 15일, 대한민국에서는 21대 총선이 치러졌다.
총 의석 300석 가운데 189석이 진보 세력에게 주어진 이번 총선에서 국민들은 현 정부를 향한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주었다.
불경건한 정치와의 연대
3월 초까지 광화문 주변에서 형성된 기독교 태극기 집회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요인에 의해 이전의 친박 태극기 부대와 다른 기독교적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우선, 그동안 끈질기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부정하며 대중 집회를 이어오던 소규모 친박 태극기 부대에 극우 기독교 일파가 가세하여 거대한 태극기 집회를 이루게 되자, 이에 편승한 야당이 적극적으로 동조하며 연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더하여 조선, 중앙, 동아 등 주류 언론들이 무수한 사설과 논평 및 칼럼으로 끊임없이 문재인 정부를 흔드는 편파 보도를 일삼아 대중을 자극했다.
게다가 극우적 성향의 목사와 신도들, 그리고 뉴라이트를 이끌던 사람들도 종래의 친박 태극기 부대 집회에 대거 합류하면서 기독교 세력이 그 주도권을 장악했다.
전염병에 대한 기독교의 해석
2019년 12월 이후, 한국에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하자, 야당과 극우 신문들은 국가적 재난 극복을 위해 정부에 협력하는 대신, 중국을 오가는 길을 차단하지 않아 일어난 방역의 실패라고 그 확산 이유를 규정하며 정부를 비난했다.
그뿐만 아니라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은 전염병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며, 31번 확진자로 시작된 신천지의 집단 감염을 언급하며 코로나바이러스는 기독교를 박해하는 세력을 징벌하기 위한 도구라고 설교했다. 거기에다 한기총에 속한 목사들은 광화문에 신자들을 운집시키고, 마치 코로나19가 현 정권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이라고 설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징벌로서의 재앙론은 불과 2달 만에 그 논거를 상실하게 되었다.
철저하고도 투명한 방역 시스템으로 대한민국은 세계 2위의 감염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세계 제1의 방역 강국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방역으로 고전하는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의 상황이 밝혀지면서 오히려 시민들의 현 정부에 대한 신뢰를 한층 두텁게 만들었다.
반(反)인권 반(反)개혁성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세월호 이후의 우리 사회는 다양한 정치적 격변의 요인들을 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정치·사회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여 수구적 입장으로 일관함으로써 과거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소위 명망 있는 목사들조차도 “세월호 우상화”의 태도를 버려야 한다거나, “예수만 바라보자.”라는 설교로 신자들의 정치적 관심을 간접적으로 비난하며 현실을 외면하려고 했다.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 해석,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사실 판단과 분석 및 대안적 사고를 제시하지 못하는 목사들과 평신도 사이의 현저한 거리감이 교회 안에서 극복되지 못했고, 결국 세월호 당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일반 신자와 교회 장로, 목사들의 입장이 엇갈려 사회적으로 의식 있는 평신도들이 상당수 교회를 떠난 “가나안 교인”이라는 이름의 탈교회적 현상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2017년 대선 직후 문재인 정권은 법정 최저임금을 인상하고 진보적 인권정책, 사회복지의 확대 정책을 실시하고, 유엔국제인권협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18-2022)도 수립했다.
하지만 기독교 내의 극우 및 보수 세력은 인권정책을 반기독교적 악법이라고 비판하기 시작했다.
종교로 인한 차별금지의 원칙에서 무슬림을 포함한 타 종교인의 권리를 인정하고, 성 평등의 원칙에 귀결되는 동성애자의 자기 결정권 존중은 도덕적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기본권 옹호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한국 교회는 현 정권을 “기독교 선교 탄압 정권”, “동성애 옹호 정권”, 그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좌파 정권”으로 규정하며 적대시했다.

왜곡된 반공 애국주의
이런 기독교 내부의 보수적 흐름을 이용하려는 정치 세력들은 앞다투어 보수적인 목사들의 활동 범위를 넓혀 주었다.
정치권이 기독교 세력을 이용할 때에는 언제나 공산주의 낙인찍기, 친북, 좌파, 빨갱이 몰이라는 수단을 동원했다.
일부 목사들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들을 사탄으로 매도하고, 반공주의를 신앙의 과제로 내면화하며, 냉전적 호전성이 마치 기독교 진리 수호의 방편인 것처럼 여겼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민주적 관용이나 다양성의 논리는 대다수의 기독교인에 의해 본능적으로 거부되었고, 상당수의 보수적 기독교인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한 채, 민주주의의 근간인 인권사상을 수용할 능력조차 지니지 못하고 있다.
광화문의 태극기 집회가 된 극우 기독교는 인해 그나마 일반의 관심 영역에서 은폐되어 교회 안에서만 퇴행적으로 유통되던 논리와 규범들이 무엇인지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그대로 다 드러내 보여준 셈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역사의식, 판단력, 논리, 가치 그리고 도덕성을 대중 앞에서 스스로 발가벗어 보여준 것이다. 고등종교로서 기독교에 대한 일반의 신뢰를 여지없이 깨뜨린 기독교, 그것은 함량 미달의 광화문 기독교의 실상이다.
광화문의 기독교
사회적 입장을 표명하는 집단은 스스로 자신들의 사회·윤리적 성향과 속성을 그 집단 구성원의 언행을 통해 드러낸다.
전광훈 목사를 필두로 하는 광화문의 태극기 집회가 가진 속성은 몇 가지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
첫째는 신학적 사고 능력의 결여다.
이들의 집회는 기독교인들의 반지성적, 반사회적 난동과 같은 성격을 보였다. 이 집단을 이끈 이들은 영성적 능력을 빙자하여 자의적 주장을 펼쳤고, 마치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것처럼 빙의(憑依)한 듯한 과장되고 거짓된 영적 기만행위를 이어갔다.
둘째, 사회윤리학적 검증 능력이 매우 취약했다.
이들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근거 없이 “북한의 간첩”, “공산주의자”라고 규정했으며, 심지어 전광훈 목사는 허위 과시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고,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유치한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렇듯 이들의 주장에는 민주주의 전통과 기독교 사상이 공유할 수 있는 자유, 평등, 평화, 정의, 인권 그리고 생명의 가치가 담겨 있지 않았다.
셋째, 이 집단은 겉으로는 기독교 신앙을 표방했지만, 기독교 표방을 통해, 속으로는 기독자유통일당이라는 정당의 정체성을 숨기고 있었다. 급기야 총선 직전 전광훈 목사는 종교집회를 빙자한 불법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드러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흔들리지 않는 시민
일부 기독교 세력이 그토록 비난하며 공격했지만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21대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는 편에 섰다.
전광훈 목사를 주축으로 한 광화문의 기독교가 내세운 기독자유통일당은 총 유권자의 1.83%(51만 3,159표)를 얻는데 지나지 않았다. 이 숫자는 한국 기독교 안에 있는 극우 세력의 총합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며, 이는 기독교 선거권자 800만 중에서도 이들을 지지한 정도가 겨우 6.6%에 지나지 않는다는 진실을 보여준 것이다.
이들에게 지성적인 현실 분석과 판단을 요구하는 것과 높은 도덕성과 윤리적 가치를 제시해 달라는 것, 그리고 성숙한 기독교 지성과 영성을 요구하는 일은 너무나 과한 요구였다.
광화문의 기독교는 그럴 능력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태는 성서에 면면히 흐르고, 한국 기독교 역사 내면에 흐르는 맑은 영성의 줄기와도 아주 거리가 멀었다.
한때 기독교는 우리 사회의 등불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을 굳건히 지켜온 세력은 기독교가 아니라 민주적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묵묵히 실천하는 기독교인을 포함은 수많은 시민이다. 시민 의식을 가진 양심적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조야한 정신을 가진 목사와 장로들이 정치와 종교의 불경건한 야합을 도모한 광화문의 기독교를 아픈 가슴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는 한국 사회의 무수한 양심적 기독교인들이 우리 사회를 지키며,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선택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익명의 양심적 기독교인들의 존재를 염두에 둔다면, 광화문의 기독교는 한국 기독교의 실상이라고 도무지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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