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가 말하는 "우리가 태어날 때, 우리의 죽는 날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무슨 뜻인가요? 사람의 출생과 죽음의 시간은 미리 정해져 있는 건가요?
성경에는 우리의 죽음의 때와 생명의 날들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구절이 여럿 있습니다. 욥기 14장 5절은 “그의 날을 정하셨고 그의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의 규례를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시편 139편 16절에는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라고 전도서 3장 1-2절에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는 익숙한 귀절도 우리 인간의 수명이 한정되어 있음을 지적합니다.
이 구절들을 쓴 성경의 기자들은 우리가 욥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왜 선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는지 그 의미를 찾으려 고군분투했고, 그래서 단순히 “인생은 짧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과 인간의 자유 의지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항상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죽는 날이 책에 기록되어 있다.”와 같이 말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무한한 지식에 비추어 보면 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의 죄를 포함한 인간의 자유 의지가 우리 자신의 수명과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과 우리의 자유 의지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며, 함부로 하나님이 우리를 죽게 만드셨다고 말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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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운동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는 악의 문제를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거나, 죽음을 포함해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에 대한 책임을 하나님께 전가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여겼습니다.
예레미야 애가 3장 32-33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가 비록 근심하게 하시나 그의 풍부한 인자하심에 따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성경은 고린도전서 15장 26절에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라고 기록하며, 죽음을 원수라 표현하고, 요한계시록 21장 4절은 “다시는 사망이 없고”라고 결국 사망을 이길 것이라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1장 38-4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친구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시며, 그를 살리셨고, 누가복음 8장 49-56절의 또 다른 이야기에서도 어린 소녀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환영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며, 공생애 동안에도 죽음을 물리치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분의 부활은 다시는 사망이 없는 시대의 "첫 열매"가 되었습니다.
연합감리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거나, 그들을 사망으로 이끄신다고 믿지 않고, 오히려 우리 인류가 당하는 고난과 죽음을 타락하고, 부서지고, 죄악 된 이 세상의 일부로 이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 없는 그 날을 고대하며, 고난과 고통, 심지어는 죽음의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임재하심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영생과 부활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기사는 연합감리교뉴스 Ask the UMC에서 작성한 글입니다. 연합감리교뉴스에 연락 또는 문의를 원하시면 김응선 목사에게 [email protected]로 이메일 또는 전화 615-742-5109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연합감리교뉴스를 더 읽기 원하시면, 주간 전자신문 두루알리미를 신청하세요.